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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상징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부활은 상징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빈 무덤은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을 이겼다는 증거입니다. 그 진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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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을 따르는 것은 마치 극장 공연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금식과 축일, 의식, 전례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참여합니다. 강림절에 우리는 오실 왕을 갈망하고 고대합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말구유에 아기를 눕히고서는 성육신에 참여합니다. 사순절 동안,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르고 죄와 죽음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 부활절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절은 월드시리즈, 교향곡의 크레센도, 연극의 절정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 년 내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 행사도 없습니다. 게임이 최종 이닝에서 취소됐습니다. 협주곡 연주 중간에 호른 파트가 연주되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에서 극장에 불을 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성직자로서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우리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 것이고 말씀이 선포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놓치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교회력에 따른 예전과 같은 예배를 지킴으로써 우리가 부활절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실입니다. 부활에 관한 진실은 인위적이지 않으며 통제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속됩니다. 기독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내가 찬성하든 안 하든 진실합니다. 갑자기 어느 날 생겨 난 나의 열렬한 믿음이나 깊은 회의론으로 인해 그 현실을 조금도 바꾸지는 못합니다.

신자들도 회의론자들도 모두 마치 그 이야기의 주된 가치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자기표현적인 것처럼 그렇게 기독교 이야기에 접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많은 경우 믿음은 우리를 실질적으로 위로하고 소속감을 주기 때문에 시작되지만, 미묘하게도 부활은 상징이나 은유로 축소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부활절은 단지 우리에게 감화를 되새기는 전통이자, 부활과 새로운 삶을 축하하며 우리가 좋은 방식으로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하도록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세계적인 유행병을 겪으며 부족한 병원과 영안실, 무너지는 세계 경제, 끔찍한 삶의 취약성과 직면한 현실에서 부활절에 대한 감상적인 마음을 드러내어선 안됩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이 상징일 뿐이라면, 지옥에나 가버려!”

위험성이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혼란과 파괴, 죽음을 가져오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고통스럽게도 명백한 사실이 있습니다. 부활이 세상의 희망이자 현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거나 혹은 기독교가 우리 시대에 쓸모가 없거나, 하나만이진실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하나의 비유나 이전 세기에 일어났던 희미해진 맹신쯤으로 여기며 은유, 유추, 회피, 초월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지 마십시오.” 존 업다이크는 ‘부활절 일곱 연시’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가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몸의 모든 조직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교회는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세상이나 현재의 고통에 관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삶을 잘 살기 위한 훌륭하고 일관된 도덕적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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